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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캐나다 워홀 2장]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시절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고 또 실천에 옮겼던 것은 제가 20대에 했던 일중 가장 잘한 일이었던것 같습니다. 캐나다 워홀을 통해서 영어 실력도 키운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구상 어디든 데려다놔도 평생 지장없이 먹고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으니까요.. 이 소중한 경험은 이 후 해외여행을 가서도 너무나 편한 마음으로 구석구석을 누비는 용기와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처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막연히 머릿속에 그리고만 있을때는 오로지 좋은 생각만 했습니다.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이고 영어는 저절로 네이티브가 되어있고 백인 이성친구와 89년식 비틀에 짐을 가득 싣고 캐나다 1번 국도를 타고 여행을 하는...ㅎㅎ

저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글을 이어가기 앞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디테일한 과정은 너무나 많은 분들이 포스팅을 해주셨고 내용도 거의 동일하기에 생략 수준으로 짧게 쓰려고 합니다. 어떤 서류를 준비해서 어디다 제출하고 하는 과정은 인터넷 어디를 보셔도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을 잘 해놓고 있습니다. 저보다 잘 적어 놓으신 분들의 자료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워홀을 준비했던 때는 2008년 초였습니다. 영어권 워킹홀리데이 국가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이렇게 세곳입니다. 뉴질랜드는 직업이 많이 없다는 말도 들었지만 미국드라마 프렌즈를 보며 외국생활을 꿈꿔왔던 저였기에 아무래도 아메리칸 잉글리쉬가를 배울 수 있는 캐나다가 브리티쉬에 가까운(물론 가깝기만하지 절대 같지 않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보다는 훨씬 끌렸고, 1년 중 아무때나 신청을해도 되는 그들보다는 1년에 정해진 기간 한번만 신청을 받고 선발하는 캐나다는 왠지 더욱 메리트가 있어 보였습니다.

유학원도 몇군데 가보았습니다. 강남역에 존재하는 유학원은 아마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가봤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그중 도움되는 정보를 얻었던 곳은 김옥란 유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도 워홀비자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에 어차피 장담할 수 없다면 직접 준비해보고 경험이라도 쌓아보자라는 마인드로 그냥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국데 기억에 남는 곳이 있습니다. 강남역 지오다노 건물에 있던 유학리더 라는 곳이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그곳을 이용하여 떠나지는 않았지만 당시 원장선생님께서(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자분이셨습니다.) 진심어린 상담을 해주신것에 상당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워킹홀리데이비자 받아서 갈꺼면 정말 열심히 살라고 아니면 차라리 영국으로 학교를 갈 것을 추천해주셨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결국 그분과 함께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자신의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진심으로 학생을 위하며 상담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가 신청할 당시 비자 신청기간은 1월 7일 부터 11일 까지 딱 5일 간 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영어를 거의 못해서 한국말로 적어놓은 제 여행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미국에서 살다 온 사촌 동생이 영작하여 작성해주었습니다. *^^*  

하지만 한국어로 적을 때 성심성의것 진심을 담아 적었습니다.
또한 각종 신청서 및 서류들은 뽁뽁이로 포장해 눈에 잘띄는 커다라고 밝은 색상의 봉투에 넣어 캐나다 워홀을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봉투의 겉모습은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선착순이지 무작위 추첨이라고 보는 것이 맞으니까요. 제 주변에서 약 10명 가까운 친구들이 지원했지만 저 하나만 선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재산상태는 아버지께 부탁드려 집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현찰을 하나의 계좌로 잠깐 모아 될수 있는 한 많은 캐쉬를 보유한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제출하였습니다. 

제가 한 노력이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이지만 이 별것 아닌 몇가지 노력이 합격을 만들어 냈습니다.
어차피 해야할 준비라면 남들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어째든 서류는 그렇게 준비하고 그 전해인 2007년 부터는 토니로마스, 코스트코 등 캐나다에서도 모두가 아는 브랜드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캐나다에 나가서 이력서를 작성할 때 한자라도 더 적을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러한 노력들이 더해져  2월 27일 장장 1달 반이라는 시간끝에 합격소식들 받았습니다. 
합격소식이후에는 곧바로 건강검진을 해야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지정 병원인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받았습니다. 
저 말고도 합격자들이 건강검진을 하러 많이들 오셨더군요..

건강검진 테스트 기록까지 제출하자 이제는 출국일만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헌데 그 해에 워홀 담당자가 장기휴가로 자리를 비운 탓에 일정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이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곧 복학시점도 다가와 부모님께서는 캐나다에 나간다더니 복학할 때가 다되어 가는데 왜 안나가냐며 복학신청도 안해놓고 이러다가 안그래도 늦은나이에 할일없이 한 학기를 또 놀게 되는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셨고 저도 제 나름대로 조바심이 났습니다.(당시는 제가 대학교를 1년 남겨놓고 있을 시점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다른 사람이 그 업무를 이어받아 처리하는 것이 라니라 그냥 업무자체를 홀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하는 방식으로는 상상도 못할일 이지요..

어째든 지속적으로 항의 팩스도 보내고 조르고 졸라 본래 나와야 했던 일정보다 한참 늦게 워킹홀리데이비자가 제손에 들어왔습니다. 
4월 16일 비자를 받고 (비자를 받게되는 날짜는 개인별로 차이가 조금씩 있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4월 17일, 아버지가 보유하신 대한항공마일리지를 인수받고 원래 쌓여있던 제것 까지 합쳐서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하러 코엑스의 도심공항터미널에 갔습니다.
약 1달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준비해 나갈 생각으로 (비자 합격여부를 몰라 아무것도 준비할 수가 없었기에..) 비행기표를 구하러 갔는데... 맙소사 6월 중순까지 비행기가 단 한대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럼 학교를 한학기 마치고 나가도 되는 것을.. 학교 복학도 안하고 기다렸는데.. 정말 답답했습니다.. 
비행기 표를 어떻게든 구해달라며 있는 사정 없는 사정 다써보고 대한항공에서 내근직으로 근무하는 누나에게 전화해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그곳에서 매달렸더니 하늘도 감복했는지 기적처럼 비행기 표가 한장이 취소되어 나왔습니다. 

너무나 기뻐 팔리기 전에 얼른 나한테 달라고 직원분께 말씀드리고 언제냐고 물었더니 바로 다음날인 4월 18일 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 내일 출국해야한다고??? ㅡ.ㅡ;;
그래도 표가 그것밖에 없다니 그것이라도 잡아야 했습니다. 

이미 시간은 오후.. 멀 준비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당장 다음날 오후 출국해야한다는 생각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를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작별인사라도 하고 나가고 싶었는데.. 가기전에 은행정리며, 가서 필요한 물품구입이며, 국제학생증, 환전, 국제 ymca카드, 국제 유스호스텔증 등등 원래 준비하려던 모든 것들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일단은 집에들어와 부모님께 당장 내일 출국해야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짐을 싸려는데 당장 내일이 출국이니 무엇을 가져가야할지도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대충 옷가지와 상비약, 캐나다지도, 영어사전을 가방에 넣고 나니 캐리어도 필요없었습니다.
배낭하나에 모든 것이 다들어갔습니다. 이게 1년 씩이나 나갔다올 사람의 짐꾸림인가 싶었습니다..
주말에 떠나는 1박2일 여행보다도 짐이 적었습니다. 

본래 두려움이 별로 없는 체질인데 당시에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언어도 안되는 상황에서 준비도 없이 그냥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다시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모일 수 있는 친구들 몇을 불러 출국사실을 알리며 솔직히 후달린다고 말하자 원래 호기로웠던 친구들은 까짓것 뭐 있냐며 정 아무것도 모르겠으면 깽판치고 경찰서에 가버리라며 가면 잠도재워주고 보호도 해준다고 농담을 해가며 위로를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곳곳을 돌아다니며 국제학생증, 유스호스텔증, ymca 회원증 등을 만들었습니다. (직접가보니 아무 필요 없었습니다. 국제학생증 하나정도 빼놓고는 사용할 일도 없었습니다. ymca 즉석에서 회원증을 만들 수 도 있었습니다.
환전도 1000불을 했습니다. 





국제 YMCA 카드


국제유스호스텔증

 

그렇게 주머니에 여권한장과 현금 천불, 그리고 배낭을 메고 인천공항에서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잠도 오질 않았습니다. 
가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라 걱정근심만 가득안은채 부모님께는 쿨한 척 오히려 기대된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