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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글로벌 기업의 그 때 그 시절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김민주 대표님이 (주)마니커 사우들을 위해 직접 작성해 주신 글 입니다.]



어떤 기업들이 과연 글로벌 기업일까? 자사 제품을 여러 나라에 판매하는 기업일까? 여러 나라에 지사를 많이 두고 있는 기업일까? 여러 나라에 생산공장을 많이 두고 있는 기업일까? 아니면 포춘, 포브스, 비즈니스위크지가 매년 선정하듯이 매출이나 시가 총액이 많은 기업일까? 아니면 인터브랜드가 매년 선정하듯이 브랜드 가치가 높은 기업일까? 사실 글로벌 기업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

 

글로벌 기업의 여부와 관계없이 한 기업의 역사가 100년이 되었다면 대단한 회사임에 틀림없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30년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의 평균 수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과 무척 대조된다.

100년 된 기업이라면 그 동안 승승장구 성장하여 지금의 기업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기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생각 밖으로 위기에 많이 직면했고, 이를 용케도 잘 헤쳐 왔음을 알게 된다. 더구나 위기로 인해 체질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 오히려 경쟁력이 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위기나 기회는 어떤 특정 시간에 오지 않는다. 예정 없이 다가온다. 자사 제품의 경쟁력이 약화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성공에 취해 모럴 해저드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또 기업은 건전하지만 국가 경제가 금융위기를 맞아 갑작스럽게 위기가 몰려 오기도 한다. 또 그런 위기는 회사 창립 5년 만에 들이 닥칠 수도 있고, 순탄하게 성장하다가 15년 만에 몰려 올 수도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기업은 많이 있다. 이 중에 현대자동차를 보면서 이 기업이 창립 후 25년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고 위기를 극복했는지 보기로 하자.

 

(사진: 국내 차량 최초로 패밀리 룩(아버지:소나타)을 선보인 1989년 모델 '엑셀')


현대자동차의 성장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기업, 현대자동차는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정을 받는 글로벌 기업이다. 2009년 매출이 72조원으로 국내 기업 중에서는 4위에 랭크되어 있다. 글로벌 브랜드 가치 측면에서 보면 현대자동차의 위상은 매우 높다. 2010년 인터브랜드의 브랜드 가치 발표에 의하면 현대자동차는 65위를 차지했다. 11위 도요타, 12위 메르세데스벤츠, 15 BMW, 20위 혼다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50위 포드, 63위 아우디와는 막상막하이고, 72위 포르쉐, 91위 페라리를 이미 능가했다. 현대자동차는 창업 43년 만에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주영 회장은 미국의 포드와 합작하여 1967년에 현대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포드사의 도움으로 코티나(Cortina)를 생산했으나 이내 포드사와 결별하고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의 기술협력을 받아 1975년에 완공된 울산공장에서 자체 모델인 현대 포니(Pony) 1976년에 출시했다. 창업 9년 만에 자체 자동차 모델을 생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모델은 한국이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디자인하고 제조했다는 점에 대단한 업적이었다. 현대자동차가 회사의 주식을 공개한 때도 바로 1976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6년 현대자동차는 소형차 모델인 엑셀(Excel)을 출시하면서 미국의 로우엔드(low-end) 시장에 진입을 시도했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미국 시장에 겨우 19년 된 한국의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수출했다는 것은 당시에 대단한 뉴스거리였다. 더구나 미국 진출 첫 해 엑셀이 16 9천 대나 팔렸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엑셀 자동차의 문제점들이 많이 드러나면서 엑셀의 평판은 크게 악화되었다. 1989년 미국 언론들은 당시 유고슬라비아가 만들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었던 최하위 모델인 유고(Yugo)와 비슷하다며 엑셀을 싸잡아 비난하기에 바빴다. 현대자동차는 포니의 성공, 엑셀의 큰 성공으로 한국에서는 기고만장했으나 미국이라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두서너 단계 높았던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이 때가 현대자동차가 창립한지 23년 되던 해였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계속 성장을 했다. 1988년에 출시한 소나타가 베스트셀링 아이템이 되면서 1989년에는 자동차 생산대수가 100만 대를 넘어섰다. 1990년에는 전주공장, 1995년에는 아산공장을 세워 다양한 자동차 모델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창립 25주년 즈음에 국내 생산공장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6년에는 드디어 해외시장인 터키에 자동차 생산공장이 준공되고, 2년 후인 1998년에는 인도에 생산공장이 준공된다. 창립 30주년 즈음에 본격적인 해외생산 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 IMF 경제위기가 몰아 닥쳐 현대자동차는 매출이 반으로 줄어들면서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이런 위기는 오히려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첫째, 현대자동차는 2000년 현대그룹에서 완전 독립되어 독자적인 행보가 가능해져 돈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아도 되었다. 둘째, 국내에서 싸우던 경쟁자들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당시 최대경쟁자였던 기아자동차를 단번에 인수하게 되었고, 큰 경쟁자가 될 뻔한 삼성자동차도 사업을 자체적으로 접었던 것이다. 셋째, 당시 원화가치 하락으로 해외 수출이 크게 늘어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지나칠 정도로 ‘최고’를 좋아한다. 현대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의 목표는 네 가지다. 최고의 고객서비스, 최고의 기술, 최고 품질의 상품, 고객에게 최고가치 제공이다. 한마디로 말해,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자는 것이다. 비현실적 목표이고 허황된 비전일 수도 있지만 현대자동차는 이를 당당하게 해냈다.





여전히 해외에선 똥차의 대명사로 확고히 포지셔닝하고 있는 현대차이지만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이 그랬듯 브랜드 자체의 가치 상승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진행됩니다.
언젠가 현대차도 토요타,  포드처럼 또는 이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 누구나 큰 성능 기대안하고 부담없이 개나소나 타고 다니는 국민차가 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